2023. 9. 11. 09:23ㆍ드라마 리뷰
우리 모두는 삶의 어느 순간에 '로맨스'라는 단어로부터 온 설렘과 기대감을 잊지 않고 싶어 한다. 중년이 되어도 마음 한편에는 그런 설렘을 간직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난 사랑을 선택해서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뒤로한 채 남편을 따라 영국에 정착한 지 22년째이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단어와 설렘은 늘 내 마음에 있다.
중년이 지나도 그런 감정을 마음 한편에 간직하고 싶다는 욕구는 변하지 않는다. 나는 사랑을 선택하고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영국에 정착한 지 22년째다. 그래서 '사랑'과 '설렘'은 나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영국의 생활에서는 기술적인 언어 장벽과 직장 스트레스에 맞서는 일상이 꾸준하다. 이런 현실에 지쳤을 때, 나는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를 켜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러던 중, 넷플릭스에는 없었던 '연인'이라는 드라마를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되었고, 베네주엘리언 친구의 도움으로 Viki에서 제대로 감상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MBC의 사극 로맨스 드라마 '연인'에 흠뻑 빠져버렸다.
이 드라마는 나에게 큰 감동을 줬다. 첫 회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은 '연인'. 주인공 장현과 길채의 사랑스러운 케미와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접하게 되면서 이 시대를 살았던 조선인들이 전쟁을 겪으면서 경험하게 되는 폐해, 굶주림 그리고 조선 여인들이 겪어야만 했던 참혹한 현실.
작가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유명한 영화의 감동과 잘 어울릴지 걱정했지만, 조선시대의 배경과 '바람사'의 로맨스는 내게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재밌게 본 드라마가 내 45년 이상의 드라마 시청자 경력으로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난 이 드라마에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매일매일 매회를 보고 또 보고 해도 질리지 않았다. 1회부터 8회까지 보고 또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회와 10회의 전개는 나를 실망시켰다. 작가에게 화가 나고 감독에게 실망하고 드라마 줄거리에 힘이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됐다. 길 채와 장현의 감정 선이 예상과 달라진 것이다. 그들의 재회는 감동적이었어야 할 터인데, 서로를 상처 주는 대사와 행동으로 표현되어 내 기대와는 달랐다.
매일 꿈속에서 만난 사내가 장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연준도령이 아니라 장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길 채가 장현이 죽은 줄 알고 그리워하던 길채가 조선으로 돌아온 장현과 재현하는 장면을 얼마나 기달렸는데, 둘의 재회하는 씬이 길채가 함 받는 씬이라니. 길 채에게 줄려고 사온 그 많은 꽃신들을 태우면서도 제일 고운 꽃신을 태우지 못하던 장현의 얼굴.
장현이 진짜 살아 돌아온 게 맞는지 재차 확인하려고 찾아온 길 채에게 장현이;
'단 하루도 사내 없이는 살 수가 없소?"

하면서 길 채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전개라니, 그런 장현에 질세라 길 채 또한 '네, 전 하루도 사내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단 하루도 사내 없인 몸도 마음도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지요. 왜 그것이 잘못되었소?" 이러니, 장현 왈 "그리 사내가 좋으면 내 차례도 한 번쯤 왔었어야지", "그저 누구든, 사내가 필요한 거라면, 내게도 한 번쯤 오지 그랬소?" 길채 왈 " 다른 사내는 다 되어도 도련님은 안되지요, 진심이라곤 한 톨도 없는 위인과는 아무것도 나눌 수 없습니다" 말하곤 가버리는 전개라니.. ㅠㅠ.
종종 이를 통해서 길 채가 장현을 매일밤 그리워하면서 울며 지냈는지 알게 되고 장현은 길채가 자신을 그리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길 채에게 같이 떠나자고 말한다. 조선시대 때 '함'을 받았다면 이미 혼인한 것과 다름없었으니 이는 곧 유부녀 길 채에게 도망하자고 한다는 것이다. 즉 불륜으로나 간통으로도 볼 수 있는 전개가 되어 버렸으니 나를 포함, 장현과 길 채의 서로를 지고지순한 사랑을 지키는 캐릭터를 희망했던 나의 분노를 사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왜 이 나이에 드라마 연인에 열광했을까? 그리고 나는 왜 내가 바라는 대로 전개되지 않는 드라마의 스토리에 화가 나는 걸까?
생각해 보니, '연인'이 내게 큰 감동을 주었던 이유로 첫째, 드라마 연인은 사극과 로맨스, 두 장르를 결합한 형태였다. 나는 사극 장르를 매우 좋아하며, 로맨스 장르도 좋아하는데 사극과 로맨스, 여기에 전쟁의 이야기가 함께 들어있는 것이다. 이러니 내가 좋아할 수밖에. 거기다, 주인공 장현은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로, 잘생기고 똑똑하며, 지략에 능하다는 설정이었다.
무엇보다 완벽한 그가 한 여자만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모습은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모든 여성들이 원하는 남편감이 아닌가 싶다. 나의 남편도 엄청난 사랑을 보여주었지만, 장현처럼 지략에 능하거나 부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또한, 길채의 캐릭터도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로 여러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도, 자신의 사랑 앞에서는 적극적이고 지고지순하다. 그렇게 무한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의리와 책임감을 잃지 않는 길채는 많은 여성들이 닮고 싶어 할 만한 모범적인 캐릭터였다. 그녀의 사랑하는 장현과의 일상을 보며, 나도 그런 행복을 느끼며 응원하게 되었다.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는 드라마의 스토리에 대한 불만은 단순한 스토리 불만족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삶의 길에 대한 불안과 불만족, 그리고 내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대변하는 것 같다.
결국, '연인'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나는 나의 삶과 사랑, 그리고 선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